보험은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되려면 기록이 필요합니다.
약속은 입으로만 하면 오래가지 않습니다.
글로 남고, 법으로 정리될 때 비로소 사회의 규칙이 됩니다.
약 4,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이미 계약을 점토판에 새겨 보관했습니다.
이 지역은 인류가 처음으로 도시를 세우고, 세금을 걷고, 상업을 체계화한 곳입니다.
무역은 활발했고, 그만큼 위험도 컸습니다.
상인들은 강과 바다를 건너며 물건을 운반했습니다.
곡물, 직물, 금속, 향료.
지금으로 치면 국제 무역이었습니다.
하지만 항해는 항상 도박에 가까웠습니다.
폭풍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배는 암초에 부딪힐 수 있었고,
도적과 해적의 위협도 존재했습니다.
문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고가 가져올 “연쇄 붕괴”였습니다.
상인은 보통 자기 돈만 쓰지 않았습니다.
자금을 빌려 사업을 했습니다.
배를 준비하고, 선원을 고용하고, 물건을 사는 데는 큰돈이 필요했습니다.
만약 배가 가라앉으면 어떻게 될까요?
물건은 사라집니다.
수익은 0이 됩니다.
하지만 빌린 돈은 그대로 남습니다.
사고는 한 번이지만,
파산은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여기서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아주 현실적인 선택을 합니다.
“위험을 계약에 포함시키자.”
그렇게 등장한 것이 해상 대차 계약,
오늘날 보험의 원형으로 평가되는 구조입니다.
이 계약은 놀라울 만큼 현대적입니다.
상인이 돈을 빌릴 때,
채권자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배가 무사히 돌아오면 원금과 함께 높은 이자를 갚는다.
하지만 항해 중 사고가 나면 빚을 면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자”입니다.
왜 이자를 더 받았을까요?
채권자도 위험을 함께 지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나면 돈을 못 받습니다.
그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가 추가 이자였습니다.
이 구조를 천천히 생각해보면 보험의 핵심 원리가 그대로 보입니다.
위험이 현실화되면 큰 부담을 면제해주고,
위험이 현실화되지 않으면 비용을 지불한다.
현대 보험의 구조와 정확히 닮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보험은 착한 마음에서만 시작된 제도가 아닙니다.
보험은 감정과 계산이 결합된 제도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그때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배가 동시에 가라앉지는 않는다.
모든 항해가 실패하지는 않는다.
경험을 통해 축적된 감각이 있었습니다.
항해의 위험은 존재하지만,
그 위험은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보험의 진짜 출발점입니다.
위험을 느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위험을 계산하기 시작한 순간.
여기서 보험은 감정의 영역을 넘어
경제 구조의 일부가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계약은 단순한 개인 간의 합의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법으로도 규정되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는
상업, 채무, 손해에 대한 규칙이 등장합니다.
이는 위험과 손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공동체가 제도적으로 고민했다는 증거입니다.
즉, 보험의 원형은
이미 국가 차원의 법 질서 안에 편입되고 있었습니다.
보험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 전체의 안정 장치로 진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통찰을 얻게 됩니다.
보험은 돈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구조가 아니라,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만약 이런 계약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인들은 무역을 꺼렸을 것입니다.
한 번의 실패가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위험이 지나치게 크면
사람은 도전하지 않습니다.
보험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합니다.
위험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지만,
위험을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줄여줍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더 멀리 항해할 수 있었고,
더 큰 거래를 시도할 수 있었고,
경제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보험은 단순한 보상 장치가 아니라
성장을 가능하게 한 안전망이었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계약은
오늘날의 보험증권과 형태는 다르지만
기능은 같습니다.
위험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통제 가능한 범위로 바꾸는 것.
이것이 보험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 본질은
4,00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보험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라
인류가 위험을 이해하고 다루기 시작한 순간의 기록입니다.
우리가 오늘 보험료를 내는 행위는
사실 그 오래된 점토판 계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험의 역사는
두려움이 계산으로 바뀌고,
계산이 제도로 발전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고대 문명의 상인들이
“이 위험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고민했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