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 코빗 인수, 1335억으로 디지털자산 판 바뀌나
미래에셋그룹이 국내 디지털자산 거래소 코빗의 경영권을 사실상 확보하며 시장 진입을 공식화했다. 전통 금융그룹이 대형 거래소를 품는 구조는 드물다는 점에서 업계의 시선이 집중된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증권 플랫폼과 디지털자산 거래 인프라를 결합한 ‘복합 서비스’ 설계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자공시시스템 공시에 따르면 미래에셋컨설팅은 코빗 주식 2690만 5842주를 취득하기로 했고, 이에 따른 지분율은 92.06%다. 취득 금액은 1335억 원이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NXC가 보유한 지분이 포함되며, 2대 주주인 SK플래닛도 동반 매각 참여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코빗의 지배구조는 미래에셋 측으로 재편된다.
“태그얼롱(Tag-along)
최대주주가 경영권 변경을 수반하는 지분을 매각할 때, 소수주주가 동일 조건으로 지분을 함께 매각할 수 있는 권리”
이번 거래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인수 주체가 금융사가 아니라 비금융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이라는 점이다. 금융 계열사가 거래소를 직접 보유하기 어려운 규제 환경을 고려한 구조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도 그룹 차원의 디지털자산 확장 옵션을 확보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가분리
전통 금융(은행·보험·증권)과 디지털자산 관련 사업을 분리해, 금융사가 디지털자산 산업을 직접 소유·지배하는 것을 제한하는 정책 원칙”
코빗은 2013년 설립된 국내 1세대 거래소다. 다만 시장 점유율은 1% 미만으로, 업비트·빗썸 중심의 양강 구도에서 존재감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렇다고 ‘가치가 낮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거래소 인수의 본질은 단기 점유율보다 ‘라이선스, 운영 경험, 컴플라이언스 체계, 기술 인프라’의 확보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도권 편입 흐름이 빨라질수록 이러한 기반 자산의 의미는 커진다.
미래에셋의 시나리오는 비교적 명확하다. 증권사가 가진 강점인 리서치, 고객 기반, 글로벌 네트워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운영 능력을 디지털자산 거래 인프라와 결합해 ‘플랫폼 확장’을 노리는 것이다. 실제로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블록체인 기업들과 디지털자산 서비스 테스트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빗 인수는 그 테스트를 ‘그룹 차원의 실전 인프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시장 판을 흔드는 요인은 ‘거래소 기능’ 자체보다도, 향후 토큰 기반 자산 시장이 커질 때 어떤 포지션을 선점하느냐다. 특히 토큰증권(STO) 제도화 흐름이 현실화될 경우, 발행–유통–사후관리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이 빠르게 재편될 수 있다.
“토큰증권(STO)
주식·채권·부동산 수익권 등 전통 자산의 권리를 블록체인 기반 ‘토큰’ 형태로 발행·유통하는 방식. 일반 가상자산과 달리 제도권 증권 규율 안에서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업계에서는 미래에셋이 코빗을 통해 ‘디지털 인프라를 확보해두는 전략적 투자’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당장의 점유율 경쟁이 아니라, 향후 제도권 상품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거래·보관·정산·고객확인 등 핵심 기능을 그룹 내에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커스터디(Custody)
디지털자산을 안전하게 보관·관리하는 수탁 서비스. 기관·법인 시장이 커질수록 핵심 인프라로 평가된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첫째, 규제 해석의 불확실성이다. 금가분리 원칙이 유지되는 한, 금융 계열사와 거래소 간의 데이터·고객 연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 유동성의 벽이다. 거래소 시장은 네트워크 효과가 강하다. 이용자가 많은 곳에 거래가 몰리고, 거래가 몰리는 곳으로 다시 이용자가 모인다. 코빗이 단기간에 ‘양강 구도’에 도전하려면 수수료·상품·상장 경쟁력뿐 아니라, 신뢰를 축적할 수 있는 운영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시장의 다음 단계는 ‘제도화 심화’다. 이용자 보호, 상장 심사 기준, 스테이블코인 규율, 기관 참여 범위 같은 후속 규제가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느냐에 따라 시장의 승자 구조가 바뀔 수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금융 허브가 제도권 디지털자산 시장을 키우고 있어, 국내 사업자도 결국 국제 표준과 경쟁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법정화폐(예: 달러)와 가치 연동을 목표로 설계된 디지털자산. 결제·송금·정산 등에서 활용 가능성이 거론된다”
결국 이번 인수는 ‘거래소를 샀다’는 뉴스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래에셋이 디지털자산을 중장기 성장축으로 놓고, 규제 환경 안에서 가능한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자본과 브랜드를 가진 금융그룹이 제도권 기반을 갖춘 거래소를 품었을 때, 시장은 단순 거래량 경쟁이 아니라 ‘신뢰·컴플라이언스·상품 설계’ 중심으로 재정렬될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자산 시장은 이제 유행의 국면을 지나, 제도권 경쟁의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